Le premier immigrant coréen de France revient en Corée en tant que combattant indépendantiste après 103 ans
독립유공자 홍재하 지사, 103년지나 고국의 품에 안긴다
프랑스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최초 유럽 한인 단체 조직
1960년 타계…정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파리외교위원회 철수 이후 대사관역활
한불통신) 주프랑스대한민국대사관(대사 유대종)과 프랑스한인회(회장 송안식)는 독립유공자인 홍재하 지사의 유해를 본국으로 봉환한다고 밝혔다.
홍지사의 유해 봉환은 국가보훈처의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본국 봉환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며, 프랑스대사관과 프랑스한인회는 지난 3월부터 국가보훈처(예우정책과)와 계속해서 유해 본국 봉환에 대해 논의하여 왔다.
이역만리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살면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한 푼 두 푼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냈던 홍재하(1892∼1960) 애국지사가 오매불망하던 고국으로 돌아간다. 홍 지사가 일제 탄압을 피해 러시아와 영국 등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1919년 프랑스에 처음 발을 디딘 지 103년 만이자,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리라는 믿음 속에 살다가 영면에 든 지 62년 만이다.
홍재하 지사(1892~1960)는 러시아(무르만스크) 노동자로 파견되었다가 일본으로 끌려갈 뻔했던 홍 지사와 200명의 한인들은 황기환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의 외교적 노력으로 35명이 영국(에딘버러)을 거쳐 프랑스로 피신했고, 1919년 프랑스 쉬이프(Suippes, 파리 동쪽 차량 2시간 30분 거리)에 정착하여 제1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복구사업에 참여하였다. 지사는 당시 복구사업에 참여한 한인들과 함께 임금의 일부를 모아 (총 6,000프랑)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서기장 황기환)에 전달 하였으며, 1920년에는 유럽지역 한인 약 50여 명과 함께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특히, 홍재하 지사의 유족(차남)인 ‘장 자크 홍푸안’씨가 보관하고 있던 홍재하 지사의 각종 사진 및 서신 자료를 지역 교민들이 정리하여 2018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전달하였는데 이 자료 중에는 당시 파리위원부 서기장이었던 황기환 지사가 홍재하 지사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해 주어 감사하다’ 는 서한이 발견되기도하였다.
장쟈크 홍푸안은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방식에 반항심을 품었던 날들도 있었다고 웃으며 옛 추억을 이야기하다가도 성실, 진실, 애정, 연대, 신앙 등 홍 푸안 씨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치들을 나열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만 해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한국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내주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던 홍 푸안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고 회상했다.
홍 지사의 막내아들인 홍 푸안 씨는 “아버지가 프랑스를 떠나는 것은 서글프지만 얼마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얼마나 그 열망이 컸는지 알기에 나의 아쉬운 마음쯤이야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홍재하 지사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홍재하 지사는 1919년 프랑스 최초이자 유럽 최초 한인단체인 재법한국민회(在法韓國民會, ‘法’은 프랑스의 중국식 표현)를 조직하는데 참여하여 제2대 회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홍재하 지사는 해방만 되면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고 하며, 해방 후에는 매년 8.15 광복절에 집에 태극기를 달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홍재하 지사는 1960년 콜롱브(Colombes) 자택에서 평생 그리던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타계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현재 콜롱브 시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이번 유해 봉환은 ▲ 묘소 파묘 및 화장(11월 10일, 콜롱브 Colombes 시립묘지) ▲ 쉬이프Suippes 시와 공동으로 추모식 거행(11월 11일, 쉬이프)
▲ 분향소 운영(11월 12일, 주프랑스대한민국대사관), ▲ 유해 파리 출발 등의 일정으로 진행되며 ▲ 국내 봉환 후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다.
프랑스한인회는 현 한인회의 뿌리인 ‘재법한국민회’가 활동한 쉬이프에서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과 함께 홍재하 지사의 공적을 기리는 추모행사도 병행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주프랑스대한민국대사관도 홍재하 지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떠나기 전 11월 12일 공관 내에 분향소를 운영하여(10:00~16:00) 그 공적을 프랑스 교민들과 같이 기릴 예정이며 특히, 유해 봉환의 주요 과정을 사진 및 영상으로 기록하여 향후 이 자료를 필요로 하는 기관 등에 제공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유해 봉환의 전 과정에는 홍재하 지사의 유족으로 차남인 장 자크 홍푸안 씨의 가족이 함께 참석하여 그 의의를 더 할 전망이다.
주프랑스대한민국대사관 유대종 대사는 “홍재하 지사님께서 고국으로 돌아가길 그토록 염원하셨는데 드디어 그 꿈이 실현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지사님의 유해가 고국의 품에 잘 안장될 수 있도록 프랑스한인회와 같이 성심성의를 다하여 지원할 것이며, 이번 유해 봉환으로 프랑스 한인사회가 더욱 결속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프랑스한인회 송안식 회장은 “한인회의 뿌리인 <재법 한국민회> 회장으로 활동하신 홍재하 지사님께서 프랑스에 정착한 최초 한인들과 함께 성금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였듯이, 프랑스 교민들의 작은 정성을 모아 이번 유해 봉환에 소요되는 일부 경비를 마련하여 지사님의 유해 봉환에 그 의의를 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해봉환 절차 및 주요 추진 일정
먼저 묘소 파묘 및 화장 절차를 밟는다. 일시는 2022.11.10.(목), 08:00~ 장소는 콜롱브(Colombes)市 시립묘지 화장지
다음날 11일은 쉬이프市 방문, 추모행사를 가진다. 2022.11.11.(금), 10:00 ~14:00 장소 : 쉬이프(Suippes)市, 1차대전 종전기념행사 및 추모행사
1차대전 전사자 충혼비, 1차대전 전사자 묘역,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비, 시민 문화회관(오찬), 전시복구 현장 방문하는 일정이다.
재불공동체를 위한 홍재하지사 분향소 설치 및 운영한다. 일시는 2022.11.12.(토) 10:00~16:00 장소는 주프랑스대한민국대사관 접견실
유해 출발 ※ 국가보훈처(유해봉환반), 출발 일정 수립 예정, 대전 현충원 안장 ※ 국가보훈처, 안장 일정 수립 예정
홍재하 지사, 프랑스 쉬이프(Suippes)市에 첫 정착
쉬이프시는 세계 제1차 대전 최대 격전지인 베르덩 인근 지역으로 홍재하 지사(1898~1960)가 프랑스에 최초로 정착한 도시이며, 그 당시 이주 한인 다수가 1차 대전 戰後 복구사업을 위해 전사자 수습 및 복구 작업 등을 실시하였다.
1919년 10월 ~ 1920년 2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약 35명의 한인들이 쉬이프시에 정착하여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였다.
1919년 11월, 홍재하 지사를 포함하여 근로자 35명이 샬롱-쉬르-마른(Châlons-sur-Marne) 지방에 도착하여, 쉬이프 시의 전쟁 피해 지역 복구 작업에 투입되었다.
마른느(Marne) 지방 고문서관에 소장된 ‘1920년 외국인 명부’는 당시 프랑스 경찰청이 발급한 체류증을 교부하면서 작성된 문서가 2019년 발견되었다.
이 명부에는 당시 복구사업에 투입된 한인 43명의 이름, 생년월일, 출생지와 거주지, 프랑스 도착일자, 체류증 발급날짜 등의 인적사항이 남아 있다.
이 문서에는 이들의 국적을 한국인(Coréen)이라고 표기하였다. 마른느 경시청은 적어도 이들을 일본국적이 아닌 한국국적으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명부에 있는 ‘인 지용 푸앙(In Chiyon Fuan)이 바로 홍재하 지사였다.
한인 노동자들은 쉬이프 시에서 1~2년간 일한 후 프랑스 각지로 흩어져 삶의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데, 1921년 3월 프랑스 인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쉬이프 시 거주 한국인은 11명으로 기록되어 있음.
유럽 최초 한인회, 재법 한국민회(1919.11.)를 이끈 홍재하 지사
홍재하 지사는 황기환(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 및 허정 (許政 ,1896~1988)과 함께 1919년 11월 재법 한국민회 (在法 韓國民會)를 결성하였으며, 홍재하 지사는 2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 1919년 3월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활동이 시작됨.
※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제1대 프랑스한인회장은 ’허 정’이었다는 의견도 있음.
재법한국민회(在法韓國民會, ‘法’은 프랑스의 중국식 표현)는 프랑스 한인회의 시조(始組)로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최초의 한인 단체이자 최초의 한인 이민자로 구성되었음.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 독립운동자금 전달
홍재하 지사는 1919년 12월 첫 급료를 받을 때부터 당시 한인 노동자들과 함께 모금을 시작하여 6개월 동안 6천 프랑의 독립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 전달하였다.
당시 전후 복구작업을 하던 한인 약 30여 명이 매월 1,000프랑 정도를 모은 것인데, 이것은 1인당 매월 35프랑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노동자 하루 일당은 70-80 프랑정도였다. 다시 말해 30-40%를 독립자금을 모금했다.
당시 파리위원부 서기장이었던 황기환 지사가 홍재하 지사 앞으로 보낸 감사편지에 따르면 재법 한국민회가 1919년 11월 19일 결성 된 직후부터 1920년 5월 18일까지 6개월간 총 6,000프랑을 전달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한, 재법 한국민회는 1920년 3월 1일 유럽각지의 한인들을 초청하여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거행한 바 있다. 이날은 친선 축구경기와 한식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신문인 <신한민보>에 따르면, 기념식에는 한인노동자 및 프랑스 유학생 10여 명, 영국 런던에서 온 일가족 10여 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인사 등 총 5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쉬이프시는 한국인들의 독립운동 정신이 깃든 역사적인 장소로 평가되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 프랑스 한인회는
매년 11월 11일 쉬이프시에서 주관하는 1차대전 종전기념행사에 한인들이 참석하여 재불한인들의 독립운동 발현지로 명명되고 있다. (출처: 프랑스 한인 100년사, 2019)
홍재하 지사 관련 참고자료
홍재하 지사는 1892년 서울 경운동에서 홍완섭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당시 제적 등본상 본적은 경기도 양수군 (지금의 양평군) 문호리 195번지이다.
지사는 1910년 함경북도 경찰부에서 발급한 일본 제국 해외여권을 소지하였는데 이때부터 ‘인정환(印正煥, In Chiyon Fuan)’이라는 이명(異名)을 사용하였으며 러시아와 영국을 거쳐 프랑스에 정착함.
프랑스 정착 후, 1926년 12월 간호사였던 마리-루이즈-뒤보아(Marie-Louise Dubois)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2남 3녀를 둠.
– 장남인 ‘장 르네 홍푸안’은 2004년 사망하였으며, 차남 ‘장 자크 홍푸안’은 현재 브르타뉴 생브리유에 거주하고 있음.
홍재하 부부는 파리 15구에 살다가 드랑시(Drancy), 콜롱브(Colombes)로 이사해 거주함. 지사는 전후복구 노동자로 출발하여, 상인 및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항공기 제조 공장에 근무하기도 하였음.
지사의 콜롱브 자택에는 많은 한국 유학생 및 대사관 직원들이 찾아왔다고 하며, 1948년에는 유엔총회 대표단으로 방불한 장면, 장택상, 조병옥, 정일형, 모윤숙, 김활란 등이 찾아왔다. 홍재하 부부는 이들의 조국 재건 노력에 건투를 빌었으며 장면에게 귀국 의사를 밝혔으나 귀국 여비를 마련하지 못해 성사되지 못했다.
지사는 1960년 2월 콜롱브 자택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콜롱브 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