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를 일기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95세를 일기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600년만 자진퇴위
물러날 때 알았던 원칙주의자
송고시간 2022-12-31 18:53
한불통신-ACPP) 31일(현지시간) 95세를 일기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는 종신직인 교황직에서 자진 사임한 역대 두 번째 교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의 로트와일러(독일 맹견)’로 불릴 정도로 교회의 전통적 가치 회복을 주창했던 그가 역설적으로 선종 때까지 교황의 자리를 유지하는 전통을 깬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본명은 요제프 라칭거로,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났다.
5살 때 뮌헨 대주교의 붉은 복장을 처음 본 뒤 가톨릭 성직을 동경하면서 성장했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77년 뮌헨 대주교가 됐고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신앙교리성 장관에 임명됐다.
교황청 내 보수파의 거두로 교황에 선출되기 전 이미 미국 타임지의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약 25년간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낸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교황에 선출됐다.
선출 당시 나이가 78세로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최고령 교황이자,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으로 주목받았다.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6세 이후로 폐지됐던 교황의 의상을 다시 착용하는 등 교회의 전통을 되살리는 데 주력했다.
타협을 거부하는 보수적 신념으로 동성애, 이혼, 인간 복제 등에 반대했으며 해방신학, 종교 다원주의, 여성 사제 서품 문제에 대해서도 보수적 시각을 유지했다.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 불릴 정도로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었으나 환경 보호, 신자유주의 비판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취했다.
8년 간의 교황 재임 기간은 논란과 스캔들로 얼룩졌다. 베네딕토 16세는 이슬람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무슬림들의 반발을 샀다.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부인한 가톨릭 주교를 복권해 유대계와도 마찰을 빚었다.
에이즈 감염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콘돔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해 국제적인 실망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를 앞두고는 10대 시절 독일 나치의 청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한 전력이 재차 불거져 자질 시비가 일기도 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스캔들도 잇따랐다. 사제들의 성 추문을 계속해서 일어났다.
2012년 베네딕토 16세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성직자들의 뇌물 비리 등을 담은 기밀문서를 언론에 폭로하면서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더는 베드로의 직무를 수행할 힘이 없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의 일로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베네딕토 16세를 “용기 있고 겸손하다”며 칭찬했다.
베네딕토 16세는 2016년 출간된 회고록에서 교회를 통치해야 하는 역할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실질적인 통치 분야는 나의 강점이 아니었다”며 오히려 “명백한 취약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8년 동안 주어진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생각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제 시절이던 1963년부터 사임한 2013년까지 60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임 후 “실제로 나는 영적인 질문에 대해 성찰하고 명상하는 교수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나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으나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깊이 있는 신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모국어인 독일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 스페인어 등 10개국 언어에 능통했다.
모차르트와 바흐의 곡을 즐겨 칠 정도로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보유했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돼 큰 화제를 낳았다.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