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105주년 삼일절
105ème Journée du Mouvement Indépendantiste à Paris
3.1 저항운동은 파리에서 시작했다.
한불통신-ACPP 2024-02-14) 파리에서 3.1절 행사는 특별하다. 105년 전 독립운동의 시작이 파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19년 6월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피해보상 및 새로운 국제질서를 위한 회의가 베르사이유에서 개최되었다.
미국의 윌슨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 주장을 내세워 식민지에 빠진 나라들을 희망의 메세지를 전했다.
미국 대통령 특사는 월슨대통령의 더이상의 전쟁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철학이 담긴 “민족자결주의”를 설명하기위해서 상해에서 임정요인들과 만난다.
상해임시정부는 정부조직 및 헌법 및 기본법 구축을 서둘렀다. 김규식박사는 일본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 파리로 파견된다.
민족자결주의 희망을 안고 우사 김규식박사는 1919년 2월 파리에 도착한다.
그는 외교위원부 설치와 파리에 모인 세계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은 독립국임을 알릴 필요성을 인식하여 3.1 운동을 요청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한국이 식민지국가에서 처음으로 독립을 요구하는 평화시위였다. 한반도 전체 인구 남녀노소가 한국독립운동을 벌린다.
하지만 일제는 3.1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을 한다.
파리외교위원부를 3.1운동에 대해서 일본의 잔악성을 고발하고 독립의 필요성을 알리는 작업을 출판과 보도작업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서 블라디보스토 한인신문 기자 윤회, 고창일 기자가 파리에 파견되었고 이를 보도한 프랑스 신문에서 발견되기도했다.
프랑스와 외국언론사는 500여회가 넘는 한국기사를 보도했다고 파리외교위원부는 밝혔다.
베트남 호치민도 김규식과 만남에 대해서 한국의 3.1운동에 대해서 본받기를 원했다.
프랑스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주시했다. 그들의 식민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두려워했다.
알제리 및 이집트 신문들이 3.1운동에 대해 보도했다.
파리외교위원부의 요청에 의해서 시작된 3.1운동은 한반도 전국에서 2달 동안 일어났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파리 한국관에 105주년 한인회주관으로 기념행사를 가진다.
한불통신-ACPP paris50kyo@gmail.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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