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언어의 실로 연결된 모든 분께…’ 한강의 감사인사
[한강 노벨상] ‘언어의 실로 연결된 모든 분께…’ 한강의 감사인사
잔잔한 어조로 30분간 작품세계 회고…
관통 키워드는 ‘삶과 죽음, 폭력·사랑’
300여명 청중 “한 편의 에세이”…
사인 요청 폭주에 예정보다 늦게 떠나
한불통신 2024-12-08)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소설가 한강(54)은 7일(현지시간) 31년간의 집필 인생을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나가듯 되짚었다.
이날 오후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다.
‘빛과 실’이라는 제목으로 8쪽 분량의 강연문을 준비한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삶과 죽음, 폭력과 사랑 등 근원적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를 청중들과 나눴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소설 ‘희랍어 시간’에 대한 언급 중)
2014년 출간한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며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특유의 잔잔한 어조로 30여분간 한국어로 강연하는 내내 300여명의 청중은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강연이 끝난 뒤 현장에서 만난 청중 다수는 “한 편의 에세이, 단편소설 같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스웨덴 언론인 앤 린 그빌로우 씨는 “정말 아름다운 강연이었다.
겨우 8세 소녀가 그런 아름다운 생각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며 “한강의 작품이 분명 쉽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보편적인 메시지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브리엘 욘손 스웨덴대 한국학 부교수도 “폭력과 같은 인간의 특성을 알 수 있는, 그리고 인간의 양면성을 알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100여명의 학생에게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는 이미 현지에서 뜨거운 한류의 인기가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은 그해 ‘수락 연설문’에 해당한다.
특히 문학상 수상자의 강연은 매년 분야의 특성상 ‘귀로 듣는 문학’으로 불린다. 노벨문학상 강연문을 따로 모아 책으로 출간하기도 한다.
강연은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됐지만, 내부에서는 노트북 사용은 물론 녹음·영상·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됐다.
이런 이유로 강연 현장에 참석한 언론사도 연합뉴스를 포함한 극소수에 그쳤다.
대부분은 한림원의 초청을 받은 관련 학계 및 단체, 대사관 관계자들이었지만, 한강의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에 한림원 홈페이지에서 ‘클릭 경쟁’을 벌여 겨우 초청권을 받았다는 교민들도 상당수였다.
스웨덴에서 약 20년 거주했다는 교민 김동은(48)씨는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시국이 어수선한 시기에 강연 중 ‘과거가 현재를 살릴 수 있나’라는 작가님의 물음이 좋은 답을 주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눈가가 촉촉해진 김 씨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정말 많이 울었다”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가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덧붙였다.
강연이 끝난 뒤 청중들의 사인 요청이 쇄도하면서 한강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자리를 떠났다.
한강은 이날 ‘언어의 실’로 연결된 전 세계 독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날 ‘수락 연설’을 마친 한강은 오는 10일 시상식 무대에 올라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받을 예정이다. (스톡홀름=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황재하 기자 =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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